이탈리아 계란 고르는 법: 숫자 0과 bio 마켓 이야기

이탈리아에서 계란을 살 때 처음 헷갈렸던 것은 포장지에 적힌 말들이었다.
biologico, all’aperto, a terra 같은 표현이 보이고, 계란 껍데기에는 긴 숫자들이 찍혀 있다.
이 글에서는 이탈리아 계란을 구분하는 방법과, 내가 실제로 계란을 고를 때 체크하는 것들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처음 이탈리아 슈퍼에서 계란을 살 때는 우선 가격이 조금 더 나가는 것을 골랐다.
뭐가 달라도 다르겠지, 하는 아주 단순한 믿음이었다.

그러다 엄마가 되고, 아이가 계란을 자주 먹기 시작하면서 장을 볼 때 조금 더 꼼꼼해졌다. 포장지마다 적힌 표현이 달랐고, 그 말들이 그냥 장식처럼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포장지에 적힌 biologico, all’aperto, a terra

나는 처음부터 아이를 위해 가능하면 biologico, 그러니까 유기농 계란을 샀다.
그런데 포장지를 볼 때마다 all’apertoa terra는 늘 헷갈렸다.

둘 다 왠지 좋아 보이는 말이었다.
한국어로 생각하면 “땅에서 키운 닭의 계란”처럼 들리고, 괜히 닭들이 햇살 아래를 천천히 걸어 다니며 흙을 콕콕 쪼는 장면이 떠오른다. 마음속에서는 이미 병아리 몇 마리까지 따라다니고 있다.

그런데 알고 보면 a terraall’aperto는 같은 말이 아니다.

이탈리아 계란 포장지에서 자주 보이는 표현은 대략 이렇게 보면 된다.

biologico는 유기농 방식이다.
all’aperto는 닭들이 야외 공간에 접근할 수 있는 방식이다.
a terra는 닭을 실내에서 케이지 없이 키우는 방식이다.

계란 껍데기의 숫자 0, 1, 2, 3

조금 더 정확히 확인하고 싶다면 계란 껍데기에 찍힌 코드의 첫 번째 숫자를 보면 된다. 이 숫자는 닭의 사육 방식을 뜻한다.

숫자 0은 biologico, 유기농 방식이다.
숫자 1은 all’aperto, 닭들이 야외 공간에 접근할 수 있는 방식이다.
숫자 2는 a terra, 닭을 실내에서 케이지 없이 키우는 방식이다.
숫자 3은 케이지 사육 방식이다.

요즘은 계란 포장지에 이 숫자를 읽는 방법이 설명되어 있는 경우도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사실 계란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이 차이를 처음 제대로 알게 됐다.

다만 실제 슈퍼마켓에서 계란을 살 때마다 껍데기에 찍힌 숫자를 직접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계란은 이미 종이팩이나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 있고, 그 위에 다시 종이 띠나 라벨이 둘러져 있는 경우가 많다.

원하면 포장을 조심스럽게 열어 숫자를 볼 수는 있다. 하지만 진열대 앞에서 매번 그렇게 하기는 번거롭다. 괜히 계란을 떨어뜨릴까 조심스럽고, 포장을 오래 만지고 있으면 나 혼자 무슨 계란 감별사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실제 장보기에서는 포장지에 적힌 표현을 먼저 보는 편이 더 자연스럽다.
biologico라고 적혀 있으면 유기농 계란이고, all’aperto라고 적혀 있으면 야외 공간에 접근할 수 있는 방식, a terra라고 적혀 있으면 실내에서 케이지 없이 키우는 방식으로 이해하면 된다. 계란 껍데기의 숫자는 그 표현들을 한 번 더 확인해주는 표시라고 보면 된다.

내가 biologico 계란을 고르는 이유

물론 모든 농장이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다큐멘터리에서 내가 본 장면들은 생각보다 위생적이거나 동물복지를 고려한 환경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 뒤로는 계란 포장지에 적힌 사육 방식 표시를 그냥 지나치기 어려워졌다.

우리 집은 계란 소비가 많은 편이다. 나, 남편, 아이 세 식구가 하루에 계란을 두 개씩 먹으니 집에 계란이 떨어지는 날이 많지 않다. 냉장고에 계란이 넉넉하면 괜히 든든하고, 몇 개 안 남으면 장보러 가야 한다는 신호처럼 느껴진다.

어쩌다 한 번 먹는 식재료라면 덜 따질 수도 있다. 하지만 거의 매일 먹는 음식이 되니 가격 차이가 있어도 한 번 더 보게 된다. 매일 먹는 음식은 결국 몸에 쌓인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만족했던 건 야외 bio 마켓 계란

사실 내가 내 인생 최고의 계란을 맛본 건 이탈리아 야외 bio 마켓에서였다. 도시마다 규모나 방식은 다르겠지만, 내가 사는 곳에서도 일주일에 한 번 정해진 날에 bio 마켓이 열린다. 이런 곳에서는 생산자에게 직접 계란을 살 수 있다.

내 경험으로는 일요일에 열리는 한 bio 마켓의 계란이 신선도, 가격, 신뢰도 면에서 꽤 만족스러웠다. 계란을 파는 사람과 직접 얼굴을 보고 살 수 있고, 계란이 어디에서 왔는지도 조금 더 가깝게 느껴진다.

무엇보다 집에 와서 계란 프라이를 해보면 차이가 난다. 흰자가 힘 있게 모이고, 노른자도 봉긋 솟아 있다. 계란 전문가가 아니어도 “아, 이건 신선하구나” 하고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맛도 좋았다. 계란이 식탁의 주인공이 된 느낌이었다.

한동안은 프랜차이즈형 유기농 전문 매장에서 계란을 구입한 적도 있다. 물론 모두 bio 계란이었고, 소규모 생산을 하는지 종이 포장지에는 농가 가족들의 사진도 있었다. 포장지만 보면 믿음직스러웠다.

그런데 집에 와서 계란을 깨보면 흰자가 힘없이 퍼지고 탱글탱글하지 않은 경우가 있었다. 유기농 계란인 것은 맞겠지만, 회전율이 낮아서인지 신선도는 조금 아쉽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그래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선택은 일주일에 한 번 열리는 야외 bio 마켓에서 생산자에게 직접 계란을 사는 것이다. 신선도도 좋고, 가격도 납득이 되고, 파는 사람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마음이 놓인다.

슈퍼에서 살 때는 유통기한과 요일을 보

다만 현실적으로 일주일치 계란을 모두 사 오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일요일 아침마다 일찍 일어나 매번 bio 마켓에 갈 수도 없다. 계란은 아침 일찍 다 팔리는 경우도 있어서, 운이 나쁘면 시장에 가도 살 수 없다.

그럴 때는 슈퍼마켓에서 biologico 계란을 산다. 슈퍼에서 살 때는 같은 bio 계란이라도 유통기한을 꼭 확인한다. 가능하면 날짜가 더 많이 남은 것을 고르고, 포장 상태도 한 번 본다.

그리고 이건 우리 동네 슈퍼마켓 기준일 수도 있지만, 일요일 오후나 월요일 오전에 가면 계란 진열대가 많이 비어 있을 때가 있다. 특히 내가 원하는 biologico 계란은 품절일 때가 많다.

주말에 집에서 케이크나 음식을 만들며 계란을 많이 쓰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탈리아에서 장을 보다 보면 계란 수요도 요일에 따라 조금 달라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계란 진열대 앞에서 “아, 오늘은 늦었구나” 하는 날이 있다.

그래서 계란이 꼭 필요할 때는 늦은 일요일 오후나 월요일 오전보다는, 토요일에 미리 사두거나 진열대가 다시 채워진 뒤에 가는 편이 마음이 편하다.

요약하면 이탈리아 슈퍼에서 계란 포장지가 복잡해 보일 때는 먼저 biologico, all’aperto, a terra 같은 표현을 보면 된다. 그리고 숫자 0, 1, 2, 3의 차이를 알고 있으면 그 말들이 조금 더 분명하게 읽힌다.

계란 사는 일도 처음에는 단어 공부처럼 시작했다.
그런데 살다 보니, 이제는 오히려 한국에 가면 어떤 계란을 사야 하나 한참 고민하게 된다.
이 글이 이탈리아에서 계란을 사느라, 마치 한국 계란 코너 앞에서 한참 고민하는 나 같은 초보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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