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자랄 때 나는 밥을 먹으면서 TV를 보는 것이 좋은 습관이 아니라고 배웠다.
“밥 먹을 때 TV 보지 마.”
아마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말일 것이다.
우리 집도 그랬다. 아버지가 저녁 뉴스를 보는 시간 정도를 제외하면 식사 중에 TV를 보는 일은 거의 없었다. 식사는 식사였고 TV는 TV였다. 그래서 나는 식탁과 TV는 원래 조금 떨어져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자랐다.
그런데 이탈리아에 와서 결혼하고 남편과 함께 살면서 놀란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식사 시간에 TV를 보는 문화였다.
처음에는 남편이 좀 특이한 줄 알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시댁에도 가고, 친구 집에도 가고, 아이 친구들 집에도 가보니 오히려 주방에 TV가 없는 집을 찾는 것이 더 어려웠다.
특히 놀라웠던 것은 TV가 놓인 자리가 바로 주방이라는 점이었다.
내가 가본 대부분의 이탈리아 집에는 TV가 두 대 이상 있었다.
하나는 거실.
그리고 또 하나는 주방.
어떤 집은 침실에도 TV가 있었다.
가족들이 식탁에 앉으면 누구나 볼 수 있는 위치에 TV가 놓여 있었다. 주방이 작더라도 TV는 꼭 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TV는 거의 항상 켜져 있었다.
뉴스가 나올 때도 있었고, 축구 경기가 나올 때도 있었다. 퀴즈쇼가 나올 때도 있었고 노래 쇼가 나올 때도 있었다.
무엇이 나오느냐는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중요한 것은 TV가 켜져 있다는 사실 자체였다.
결혼 초반에는 이 문제로 남편과 여러 번 이야기를 했다.
나는 TV를 끄고 밥을 먹는 것이 좋았다. 음식을 먹고,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서로의 얼굴을 보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식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반면 남편에게는 TV를 켜놓고 식사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처음에는 남편도 내 의견을 존중해 TV를 끄고 식사를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다시 뉴스가 켜지기 시작했다.
남편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싶어 했다.
그 마음도 이해가 갔다.
그래서 나는 뉴스를 보는 것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완전히 익숙해지지는 못했다.
특히 식사 시간에 사건과 사고가 나오는 뉴스를 보며 밥을 먹는 것은 여전히 마음이 편하지 않다.
그런데 더 흥미로운 것은, 내가 이탈리아에 오기 전까지 가지고 있던 이탈리아 식탁에 대한 이미지와 실제 모습이 너무 달랐다는 점이었다.
아마 많은 한국 사람들이 비슷하게 생각할 것이다.
유럽 사람들은 식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천천히 먹고, 음식을 음미하고, 가족들과 오래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낸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적어도 내가 16년 동안 봐 온 이탈리아 가족들의 식사는 조금 달랐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음식을 사랑한다.
그건 분명하다.
하지만 그 말이 매 끼니를 의식처럼 천천히 음미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적어도 내가 본 가족 식사에서는 그랬다.
파스타는 생각보다 빨리 비워졌다.
나는 유럽 사람들은 음식을 오래 음미하며 먹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몇 번 씹고 금세 삼키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르던지, 처음에는 그 리듬을 따라가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TV에서는 뉴스나 축구가 흘러나오고, 누군가는 그날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또 누군가는 거기에 대답했다.
식탁은 조용하지 않았다.
TV 소리와 사람들 목소리가 겹쳤고, 대화는 이쪽저쪽으로 튀었다.
처음에는 그 모든 소리가 한꺼번에 들리는 것이 꽤 힘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집 사람들은 아무도 불편해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는 TV를 보고, 누군가는 파스타를 말고, 누군가는 그 위에 말을 얹었다.
식탁은 시끌벅적했지만 그렇다고 식사가 소홀해 보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것이 그들에게는 자연스러운 가족의 시간처럼 보였다.
그리고 한 가지 더 흥미로운 점이 있었다.
가족끼리 식사할 때는 TV를 켜두지만 손님이 오면 TV를 끈다는 것이다.
시댁도 그랬고, 내가 가본 다른 집들도 대부분 그랬다.
가족끼리는 TV와 함께 식사를 해도 괜찮지만, 손님이 온 식탁에서는 TV 소리보다 사람의 목소리가 더 중요해진다. 그날의 음식, 서로의 안부,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에 더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TV를 끈다는 것은, 그 식사 시간을 조금 더 정중하게 대한다는 뜻처럼 보였다.
예전에 남편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왜 이탈리아 사람들은 TV를 켜놓고 밥을 먹느냐고.
남편은 예전 이탈리아에서 TV가 표준 이탈리아어를 퍼뜨리는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탈리아는 통일 이후에도 지역마다 사용하는 말이 많이 달랐고, TV가 보급되면서 표준 이탈리아어가 전국으로 퍼졌다고 한다.
특히 작은 마을이나 시골 지역에서는 TV를 통해 처음으로 표준 이탈리아어를 접한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
물론 그것이 오늘날 식탁 위 TV의 모든 이유를 설명해주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탈리아에서 TV가 단순한 오락 기계 이상이었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그리고 가끔은 이런 생각도 한다.
어쩌면 TV는 가족들이 너무 많은 말을 하지 않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하지만 TV가 켜져 있으면 사람들은 뉴스 진행자의 말을 듣고, 축구 해설자의 말을 듣고, 퀴즈쇼 참가자의 말을 듣는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짧은 대화가 오간다.
만약 TV가 꺼져 있었다면 어땠을까.
더 많은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웠을까.
아니면 오히려 더 많은 말다툼이 생겼을까.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내가 상상했던 이탈리아 식탁에는 TV가 없었다.
하지만 실제 이탈리아의 식탁에는 TV가 있었다. 그것도 높은 볼륨으로.
그리고 16년 동안 이탈리아에서 살며 알게 된 것도 하나 있다.
적어도 이 나라에서 TV는 단순한 전자제품이 아니다.
주방 한쪽에 놓여 가족들과 함께 세월을 같이하는 가구 같은 존재에 더 가까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