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 처음 왔을 때의 나는 종교적인 것과 영적인 것을 거의 믿지 않는 사람이었다.
가톨릭 문화에 대해서도 잘 몰랐고, 세례식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그때는 몰랐다.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그 문화가 훗날 아이의 성장과 가족의 기억을 생각할 때 다시 마음에 걸리게 될 줄은.
세례식이 뭔지도 몰랐던 시절
그런데 남편 집안에는 신부님이 계셨다. 남편의 작은아버지는 가톨릭 신부님이었고, 남편 남매들을 본인의 친자녀들처럼 여기셨다. 남편 가족 전체에는 아주 자연스럽게 가톨릭 문화가 스며들어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열심히 성당에 다니는 것은 아니었다. 믿음의 정도는 사람마다 달랐다. 하지만 가족 문화 전체에 어떤 가톨릭적인 분위기가 짙게 남아 있는 느낌이었다.
우리 부부 역시 종교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런데 작은아버님께서 집안 아이들의 세례를 모두 직접 해주셨기 때문에, 우리 아이 역시 자연스럽게 세례를 받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특이한 세례식이었다. 보통은 성당에서 이루어지는데, 작은아버지께서는 아마 우리 부부가 성당까지 직접 가는 걸 썩 내켜 하지 않을 거라는 걸 짐작하셨던 것 같다. 성수와 필요한 도구들을 가지고 시댁으로 직접 오셨고, 그렇게 우리 아이는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서 조촐하게 가족들과 함께 작은아버님께 세례를 받았다.
그때 나는 세례식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도 잘 몰랐다. 이미 다섯 시간 넘게 걸려 시댁에 도착해서 지쳐 있었던 나는 솔직히 말하면 그 행사가 썩 탐탁지는 않았다.
낯을 많이 가리던 우리 아이는 오랜만에 보는 작은할아버지 품 안에서 잔뜩 긴장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머리에 성수를 뿌리는 순간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그때 대모와 대부를 맡아준 큰 시누이 부부가 웃으면서 “아이들은 원래 저 부분에서 많이 운다”고 말해주었던 기억이 난다.
그 장면은 아직도 조금 선명하게 남아 있다.
아마 내 얼굴에도 그 불편한 감정이 꽤 드러났을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세례식이라는 것이 단지 종교적인 의식이라고만 생각했다.
성당에서 본 세례식과 첫 영성체

그러다가 몇 년 뒤, 남편 여동생의 아이가 태어나 세례식을 하는 것을 보며 처음으로 “이탈리아식 세례식”의 분위기를 제대로 경험하게 되었다.
보통 아이가 태어나고 몇 개월에서 한 살 정도 사이에 세례식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성당에서 여러 아이들이 함께 세례를 받았고, 신부님과 가족들이 함께 의식을 진행했다. 한 시간 정도 이어진 뒤에는 성당에서 가족사진을 찍고, 이후에는 모두 함께 식당으로 이동해 점심 식사를 했다.
예전에는 이런 행사 뒤에 집에서 음식을 준비해 먹는 경우가 많았다고 들었는데, 요즘은 레스토랑에서 코스 식사를 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았다. 우리나라의 돌잔치처럼 큰 케이크를 준비하고, 사진을 찍고, 본보니에(bomboniera)라고 부르는 답례품을 나누는 것도 빠지지 않았다.
그리고 아이들은 대부분 흰색 옷을 입었다. 작은 아이들이 하얀 옷을 입고 성당 안에 모여 있는 모습은 꽤 인상적이었다.
얼마 전에는 10년 전 세례식을 받았던 그 조카의 첫 영성체에도 다녀왔다.
이탈리아에서는 첫 영성체를 프리마 코무니오네(Prima Comunione)라고 부른다. 아이가 처음으로 성체를 받는 날인데, 보통 열 살 전후에 많이 하는 것 같았다.
그날 역시 여러 아이들이 함께 의식을 진행했다. 분위기는 경건했지만 동시에 아이들을 위한 행사라는 느낌도 강했다. 노래도 부르고, 아이들이 한마디씩 읽기도 하고, 신부님의 말씀도 있었다.
흥미로웠던 건 성당과 식사 자리에 오는 사람들의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는 점이었다.
성당에는 가족뿐 아니라 친구들, 부모들의 지인들도 꽤 왔다. 하지만 식사 자리는 훨씬 가족 중심이었다. 아이의 친한 친구 몇 명이 초대되었지만, 친구 부모들은 대부분 성당까지만 참석하고 식사에는 오지 않았다.

식당에서는 코스 요리가 나오고, 케이크를 자르고, 답례품인 본보니에를 나누었다. 한쪽에는 사진을 찍기 위한 예쁜 테이블 장식도 준비되어 있었다. 한국의 돌잔치 장식과 비슷한 느낌도 조금 들었다.
새로운 코스 음식이 하나 나올 때마다 중간 텀이 꽤 길었고, 그때마다 아이들은 야외 정원에서 놀고 어른들은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꽃을 피웠다.

사람들의 옷차림도 기억난다. 결혼식처럼 아주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모두 꽤 단정하게 차려입고 왔다. 여자들은 블라우스와 정장 바지, 재킷 같은 옷차림이 많았고, 남자들도 대부분 재킷이나 셔츠를 입고 있었다. 아주 캐주얼한 차림은 거의 보지 못했다.
재미있는 건, 이탈리아 안에서도 남부로 갈수록 이런 문화가 더 짙게 남아 있다는 점이다. 행사도 조금 더 성대하고 화려하게 치르는 경우가 많았고, 사람들의 옷차림이나 레스토랑의 코스 구성, 선물 규모 역시 조금 더 커지는 느낌을 받았다.
축하하는 마음과 현실적인 부담 사이
그런데 이런 행사들은 정말 길다. 처음에는 “점심만 먹고 끝나는 건가?” 싶었는데, 막상 앉아보면 시간이 끝없이 이어진다.
예를 들어 성당 의식이 오전 11시에 시작되고, 식당에서 점심을 1시 반쯤 먹기 시작하면 그 자리가 저녁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우리는 이번에 조금 일찍 자리를 떴는데도 저녁 6시쯤이었고, 다른 가족들은 아마 8시 가까이까지 있었다고 들었다.
그리고 또 하나 현실적으로 느껴졌던 건 선물 문화였다.
선물은 손목시계, 작은 다이아몬드 보석, 은팔찌나 목걸이 같은 물건으로 하기도 하지만 현금을 주는 경우도 많았다. 관계에 따라 다르지만 금액도 생각보다 큰 편이었다. 가까운 가족이라면 100유로 이상 하는 경우도 흔한 것 같았다.
이런 부분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우리 아이는 성당에서 정식 세례식을 하거나 첫 영성체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늘 남의 집 행사에만 가는 사람이 되었다. 물론 한두 번은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매번 축하하는 마음도 진심이다. 그런데 이런 행사들이 몇 년 동안 여러 번 이어지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아… 또인가…?” 하는 조금 애매한 부담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한국식으로 비유하자면, 다른 아이들의 돌잔치에는 계속 초대되어 축하하고 선물도 하는데, 정작 우리 아이는 돌잔치를 하지 않아 그런 축하를 받을 일이 없는 느낌과 조금 비슷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보인 것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우리 부부의 생각도 조금 달라졌다.
첫 영성체를 하기 위해서는 보통 카테키즈모(catechismo)라고 부르는 성당 교육을 몇 년 동안 받아야 한다. 우리 아이의 친구들 대부분도 여덟, 아홉 살 무렵 카테키즈모를 시작했고 첫 영성체를 했다.
그런데 우리 부부는 그때 아이를 보내지 않았다.
남편 역시 어릴 때 종교 활동을 하며 자랐지만, 오히려 교회와 종교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가진 부분도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역시 카테키즈모를 단지 “종교 교육” 정도로만 생각했고, 아이에게 물어봤을 때 아이도 싫다고 해서 억지로 보내지 않았다.
당시에는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종교를 강요하지 않고, 나중에 아이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아이를 키울 때는 잘 몰랐다. 세례식도, 첫 생일도, 여섯 살 생일도, 첫 영성체도 그저 조금 번거로운 행사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나는 원래 그런 기념일을 크게 챙기는 편이 아니었다. 나보다 열 살 넘게 어린 남동생의 여러 기념일을 정성스럽게 챙기던 엄마를 보면서, 어릴 때부터 속으로는 조금 허례허식처럼 느끼기도 했다. 나는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그렇게까지 하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했던 사람에 가까웠다.
그런데 아이가 어느새 커버리고, 그 시간들을 함께 보아주던 시댁 어른들도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나니 마음이 조금 달라졌다. 그때 조금 더 챙겼더라면 어땠을까. 세례식도, 첫 생일도, 여섯 살 생일도, 첫 영성체 같은 통과의례도 조금 더 마음을 내어 받아들였더라면 어땠을까.
돌이켜보면 그것은 사랑을 덜 줬다는 뜻은 아니었다. 다만 내가 이 나라의 문화를 충분히 몰랐던 것 같다.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에게 돌잔치를 하지 않은 것처럼, 이탈리아에서 자라는 아이에게도 이 나라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기념일과 공동체의 방식이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모든 이탈리아 가정이 이런 행사를 알뜰살뜰 챙기는 것은 아니다. 세례식도, 첫 영성체도, 생일잔치도 가족마다 다르고 선택도 다르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모든 것이 꼭 허례허식만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런 행사는 아이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 가족이 함께 꺼내볼 수 있는 기억을 만들어두는 일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카테키즈모에 대해서도 조금 다르게 느낀다.
시간이 지나 나중에서야 알게 된 것이 있다. 이탈리아에서 카테키즈모는 단지 종교 수업만 하는 공간이 아니라는 것을. 아이들이 함께 모여 활동하고, 봉사하고, 운동하고, 시간을 보내는 하나의 커뮤니티 역할도 한다는 것을 말이다. 또 아이들에게 도덕적 가치를 가르치는 곳이기도 하다.
남편도 어릴 때 그런 커뮤니티 안에서 자랐다. 그리고 지금 돌이켜보면, 우리는 종교적인 부분만 보고 그 안의 다른 역할들을 충분히 보지 못했던 것 같다.
물론 지금도 그 문화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많다. 실제로 교회 문화에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고, 비판적인 시선도 존재한다. 하지만 동시에 많은 아이들이 그 안에서 친구를 만들고, 활동을 하고, 공동체를 경험하고, 봉사와 도덕적 가치를 배우며 자라는 것도 사실인 것 같다.
재미있는 건, 이번에 첫 영성체를 한 조카의 아빠 역시 처음에는 아이를 카테키즈모에 보내고 싶어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런데 시누이는 보내고 싶어 했고, 오히려 그때 우리 부부가 그들에게 “단순히 종교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고 이야기했었다.
물론 우리의 조언 때문은 아니었겠지만, 조카 아이는 카테키즈모에 참여했고 첫 영성체를 받았다.
이탈리아에서 오래 살다 보면, 가톨릭은 단순한 믿음 이상의 어떤 문화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믿음의 강도와는 별개로, 가족과 행사와 공동체 안에 자연스럽게 남아 있는 생활 문화 같은 것 말이다.
그러니까 이탈리아의 세례식과 첫 영성체는 단순한 종교 행사가 아니었다.
아이를 축하하는 자리이면서, 가족이 모이는 날이고, 동시에 한 아이가 어떤 공동체 안으로 들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행사이기도 했다.
나는 여전히 종교적인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조금은 알게 되었다. 이탈리아에서 가톨릭은 믿음으로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가족의 기억과 아이들의 성장, 그리고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는 방식 안에도 남아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