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소리일까, 사랑일까-공원에서 배운 이탈리아식 육아

이 글은 이탈리아 공원에서 자주 마주친 조부모님의 돌봄 방식을 통해, 잔소리와 사랑의 경계를 천천히 들여다본 기록이다.
아이를 자유롭게 두고 싶은 마음과, 이곳에서 요구되는 돌봄의 방식 사이에서 내가 계속 균형을 맞추며 양육해온 과정도 담았다.

이탈리아 공원에서 본 부모와 아이의 모습, 잔소리와 사랑 사이의 육아 장면

이탈리아에서 아이를 키우며 공원에서 자주 보게 되는 장면이 있다.

아이들은 부모나 조부모의 손을 잡고 공원에 온다. 막 걷기 시작한 아이부터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어 보이는 아이까지, 나이에 상관없이 어른의 시선과 말이 늘 함께한다.

특히 눈에 들어오는 건 아이들보다 어른, 그중에서도 조부모님들의 태도다. 이곳의 조부모님들은 아이에게 굉장히 많은 것을 말로 전한다.


공원

미끄럼틀 앞에서는 어떻게 올라가야 하는지, 어디를 잡아야 하는지, 너무 꼭 잡으면 다칠 수 있으니 힘을 빼야 한다는 설명이 이어진다.

줄을 설 때는 차례를 기다리는 법을 알려주고, 놀이가 끝나면 쉬는 타이밍을 말해주며, 물병을 마실 때는 양손으로 잡아야 한다고 덧붙인다.

나는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이런 방식의 육아에 익숙하지 않았다.


내가 생각해온 육아는 아이를 자유롭게 두고, 아이가 스스로 생각하며 놀 수 있도록 지켜보는 쪽에 가까웠다. 북유럽이나 영국에서 흔히 떠올리는 방식처럼 아이의 놀이에 어른이 최소한으로 개입하고 정말 필요할 때만 도움을 주는 형태다.

나는 이탈리아 사람들도 어느 정도는 그런 방식을 선택할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이곳에서는 아이가 놀고 있는 순간에도 어른의 말과 개입이 계속 이어진다.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자주, 훨씬 더 많이.

사실 나는 아이가 무언가를 생각하며 놀고 있을 때, 혹은 친구들과 자기 나름의 맥락을 가지고 놀고 있을 때 그 상황이 크게 위험하지 않다면 굳이 개입하거나 훈수를 두지 않는 편이다.

아이는 이미 자기만의 생각과 흐름 속에서 놀고 있을 텐데, 어른의 말이 그 맥락을 끊어버릴 수 있다고 느껴왔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에는 내 개인적인 경험도 크게 작용했다.

나는 열두 살 차이 나는 남동생이 있다. 그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아이란 생각보다 그렇게 힘들게 키우지 않아도 되는 존재라는 걸 느꼈다. 너무 많은 것을 해주거나, 너무 많은 지식과 지시를 주는 것이 반드시 아이의 성장에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는 감각이었다.

그래서 내 아이에게도 과하게 가르치려 하지 않았고, 필요 이상으로 개입하지 않으려 했다.


시선

그런데 이탈리아에서 아이를 키우며 나는 또 다른 현실을 마주하게 됐다.

아이를 자유롭게 두고 조금 떨어져 지켜보고 있으면, 내가 아이에게 관심이 없는 엄마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 아이의 안전이나 건강에 덜 민감한 사람처럼 읽힐 수 있다는 것.

아직도 솔직히 잘 모르겠다. 이탈리아 아이들이 특별히 더 사고뭉치여서 그런 건지, 아니면 이 문화에서는 아이에게 계속 말로 개입하고 이른바 잔소리를 하는 것이 아이를 잘 키우는 방식으로 여겨지는 건지.

확실한 건 이탈리아에서의 육아는 아이를 혼자 두지 않는다는 태도를 아주 강하게 전제로 한다는 점이다.

이 차이를 이해하는 데 나는 여전히 시간을 쓰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아이뿐 아니라 내가 믿어온 육아 방식도 함께 다시 바라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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