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가정에서 아이가 자라면서, 부모의 언어를 바라보는 시선은 조금씩 달라진다. 처음에는 아이가 엄마의 이탈리아어를 고쳐주곤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것을 불편함이 섞인 마음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어느 시기까지는 아이가 내 이탈리아어를 고쳐주는 일이 오히려 고맙게 느껴졌다. 내가 틀린 표현을 말하면 아이는 자연스럽게 바로잡아주었고, 나는 웃으면서 고맙다고 말하곤 했다. 엄마로서 아이가 기특했고, 어른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분위기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이는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지나며 학교와 친구들 사이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만큼 아이에게 이탈리아어는 자신과 또래 친구들, 그리고 자기가 속한 사회의 언어가 되어갔다. 그와 함께 엄마의 서툰 이탈리아어도 점점 더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느 날 아이가 내게 말했다.
엄마는 이탈리아에 산 지 10년이 넘었는데 왜 아직도 이탈리아어를 그렇게 해?
이 말은 예전에 들었던 엄마 그건 틀렸어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단순히 발음이나 표현을 지적받았다고만 느끼지 않았다. 그 말 안에는 아이가 자라며 보게 된 세계가 함께 들어 있었을 것이다. 다른 엄마들과 자기 엄마가 다르다는 감각, 그리고 엄마가 이 사회 안에서 조금 더 눈에 띄는 사람이라는 사실도 아이는 이미 알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사람은 자기가 실수한 것도 아닌데, 옆에 있는 사람이, 특히 가까운 사람이 실수하면 이상하게 더 민망해질 때가 있다. 아이도 아마 그런 감정을 느꼈을지 모른다. 내가 이탈리아어를 말할 때마다, 아이는 엄마의 실수 자체보다 그 실수가 자기 옆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을 더 크게 느꼈을 수도 있다.
거기에 학교와 또래 사회의 공기도 있었을 것이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일찍 구분을 배운다. 누가 더 자연스럽고, 누가 조금 다르고, 누가 놀림을 받기 쉬운지를 빠르게 알아차린다. 그리고 그런 공기 속에서 아이는 어느 순간 우리 엄마도 이민자구나, 그리고 아이들이 가볍게 놀리는 바로 그 범주 안에 들어가는 사람이구나 하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 생각은 아마 아이 자신에게로 다시 돌아갔을 것이다. 엄마가 이민자라면, 그리고 엄마의 말투와 발음이 눈에 띈다면, 나는 어디쯤에 있는 사람일까. 아이에게 그 질문은 단순하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자기는 그저 다른 친구들처럼 자연스럽고 완전한 이탈리아 아이이고 싶다고 느끼는 시기라면 더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아이의 말을 들으며 마음이 전혀 아프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감정을 내가 대신 해결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아이는 아이대로 자기가 속한 세계 안에서 어떤 사실들을 받아들이고, 혼란스러워하고, 또 자기 방식으로 정리해가야 하는 시기를 지나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을 없애주는 것이 아니라, 말로 풀어주고 너무 혼자라고 느끼지 않게 곁에 있어주는 일 정도였는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아이가 내 이탈리아어를 고쳐주는 일이 대견하게만 느껴졌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것은 단순히 언어를 배우는 문제가 아니었다. 아이가 이 사회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고, 그 안에서 자기 자리를 확인하려 애쓰는 과정과도 닿아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아이의 불평을 늘 조용히 듣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느 날 또 비슷한 말을 하기에 나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는 한국어, 영어, 이탈리아어를 할 줄 알아. 프랑스어는 많이 잊어버리긴 했지만 그래도 너보다 더 많은 언어를 할 줄 알아. 넌 이탈리아어랑 영어 조금 하고, 한국어는 엄마 덕에 하는 거고, 프랑스어는 엄마보다 못하잖아. 그러니 엄마를 너무 쉽게 평가하지 마.
아이도 멋쩍게 웃었고, 나도 같이 웃었다.
가끔은 다 들어주고 받아주는 것만이 능사는 아닌 것 같다. 한 번쯤은 이런 말도 해줄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사회 안에서 아이가 잘 뿌리내리고 자라는 동안, 엄마로서 아이에게 튼튼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싶은 마음만은 변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