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이탈리아 아이 생일파티 문화 1
이탈리아에서 아이를 키우다 보면 생일파티 문화가 한국과 꽤 다르다는 걸 자주 느끼게 된다.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해 보여도, 누가 오고 어떻게 축하하고 어떤 방식으로 선물을 주고받는지 하나씩 들여다보면 그 안의 의미가 조금씩 다르다.

유아원에서는 교실 안에서 조용히
가장 먼저 차이를 느낀 것은 유아원 시기였다. 유아원에서 생일이 있으면 주인공 아이의 엄마가 먼저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외부에서 케이크나 간식을 사 와야 했다. 집에서 만든 음식은 안 된다고 했다. 혹시라도 배탈이나 알레르기 같은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준비된 음식은 유아원 안에서 선생님과 아이들이 함께 나누어 먹으며 생일을 축하했다. 이때 부모는 빠진다. 생일은 교실 안에서, 아이들과 선생님이 함께 보내는 시간으로 진행되었다.
유치원부터는 본격적인 생일파티가 시작된다
본격적으로 외부에서 생일파티를 여는 것은 유치원, 그러니까 만 세 살 이후부터 초등학교 입학 전 시기부터였던 것 같다. 집에서 하는 아이도 있고, 파티 공간을 빌리는 아이도 있었다. 이건 각 집의 사정에 따라 달랐다.
우리 아이가 다닌 유치원에는 생일파티를 하게 되면 초대장을 선생님을 통해 다른 아이들 부모에게 전달하는 규정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중요한 원칙이 하나 더 있었다. 한 반 아이들 가운데 누구도 예외 없이 모두를 초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누구도 소외되지 않게 하려는 뜻이었다. 다른 유치원도 다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초대장과 단체방, 그리고 선물 준비
이렇게 초대장이 돌면 부모들 사이에서는 곧바로 WhatsApp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보통 학부모 대표가 한 사람당 10유로나 15유로 정도씩 돈을 모은다. 내 경험으로는 유치원과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10유로였고, 그 이후에는 15유로 정도가 더 흔했다. 다만 지금도 모두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생일을 맞은 아이의 부모에게 먼저 묻는다. 아이가 무엇을 받고 싶어 하는지 확인한 뒤 그 선물을 함께 준비한다. 처음에는 이 방식이 조금 딱딱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그런 방식이 전혀 민망하거나 어색한 일이 아닌 것 같았다. 오히려 아이가 원하는 선물을 정확히 준비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처럼 받아들여졌다.
어릴수록 부모와 가족도 함께 움직인다

유치원 시기의 생일파티는 아이들만의 자리가 아니었다. 아이들이 어리다 보니 부모들도 함께 모인다. 그래서 생일파티장은 노는 아이들의 목소리와 부모들의 대화가 섞여 꽤 떠들썩하다. 장소에 따라 다르지만 한 번 시작하면 최소 3시간에서 길게는 5시간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자주 봤다.
아이들이 어릴수록 생일파티는 아이들만의 행사가 아니라 부모들 사이의 만남의 자리이기도 했다. 부모들은 한쪽에서 학교 이야기나 아이들 이야기를 나누고, 자연스럽게 정보를 교환한다. 생일파티가 작은 사교의 장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이가 어릴수록 조부모를 포함한 가족들이 생일파티에 아주 자연스럽게 참여한다는 점이다. 부모뿐 아니라 조부모, 고모, 이모 같은 가족들이 함께 와서 축하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가족 간 유대감이 강한 집일수록 다른 도시에 살아도 일부러 시간을 내어 참석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런 모습은 아이들이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어도 이어지는 집들이 있었다. 사촌 생일인데도 빠지지 않고 꼭 참석하는 가족들을 보면서, 생일이라는 날이 단순히 아이 개인의 기념일이 아니라 가족 전체가 함께 모이는 날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초등학교 이후 생일파티는 조금 달라진다
초등학교에 올라가면 분위기가 조금 달라진다. 초대장은 사라지고, 한 반 아이들을 모두 부르기보다는 친한 아이들만 초대하는 경우가 훨씬 많아진다. 다만 이것도 아이의 생일이 몇 월에 있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걸 봤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 입학 후 첫 생일이 개학 직후이거나 몇 달 지나지 않은 시기라면, 부모가 조금 부담스럽더라도 반 아이들을 모두 초대하는 경우가 있었다. 학년 초이다 보니 모든 아이들과 잘 어울릴 수 있도록 하려는 좋은 의도가 느껴지기도 했다. 이런 경우를 제외하면 대체로 친한 친구들 중심으로 파티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간혹 생일인 아이가 남자아이면 같은 반 남자아이들만 모두 초대하고, 여자아이면 여자아이들만 초대하는 경우도 봤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파티 장소도 조금씩 바뀐다. 맥도날드나 영화관 같은 곳으로 옮겨가는 경우가 많아진다. 이 시기부터는 부모들이 파티장에 남아 있거나, 잠시 떠났다가 아이를 데리러 오는 경우가 섞이기 시작한다.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되면 부모의 손이 빠진다
중학교에 들어가면 분위기가 다시 한 번 달라진다. 친한 친구들만 초대하는 경우가 훨씬 뚜렷해지고, 부모들도 아이를 파티 장소에 데려다준 뒤 끝날 시간쯤 다시 데리러 오는 경우가 많아진다. 이때 아이들은 레이저 게임장이나 축구장, 풋살장, 패들장 같은 곳에서 생일을 보내기도 하고, 방탈출게임 같은 장소에서 모이기도 한다.
고등학교쯤 가면 부모의 개입은 훨씬 더 빠르게 줄어든다. 어떤 아이들은 선물보다 현금을 원하기도 하고, 아이들끼리 돈을 모아 선물을 사주기도 한다. 여전히 부모가 파티를 주선하는 경우도 있지만, 소통은 대부분 아이들을 통해 이루어진다. 부모는 가끔 사실 확인차 다른 부모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정도이고,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때와 비교하면 개입이 훨씬 적다.
여름방학 생일은 늘 조금 다르게 준비한다
우리 아이처럼 여름방학 중에 생일이 있는 경우는 또 조금 다르다. 방학 동안 아이들을 다시 모아 생일파티를 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바캉스로 도시를 떠난 아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해마다 상황에 맞게 조율을 해가며 생일을 축하했다. 유치원 때는 아이들 사이의 관계가 아직 그렇게 끈끈하지 않아서 가족끼리, 조부모와 고모, 이모, 친한 지인들과 함께 했다. 초등학교 때는 공원에 있는 동네 아이들과 부모님들, 그리고 그날 시간이 되는 친한 친구들을 함께 불러 조금 열린 형태의 생일파티를 하기도 했다. 선물을 따로 생각하지 않고, 올 수 있는 사람들이 와서 함께 놀고 축하하는 식이었다.
한두 번은 레스토랑을 예약해서 친한 아이들과 부모들을 함께 초대했고, 또 한 번은 바캉스 기간과 겹쳐 바닷가에서 가족 셋이 조용히 보냈다. 고모 집을 방문하고 있던 해에는 고모 가족과 우리 가족, 조부모님과 함께 하기도 했다. 또 한 번은 아이 생일이 8월 말이어서, 대부분의 아이들이 9월쯤 도시로 돌아온 뒤 조금 기다렸다가 축구클럽 친구들과 반 아이들을 함께 불러 크게 한 적도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아이 생일잔치가 더 크게 느껴지는 이유
한국에서 아이들 생일잔치는 물론 중요하지만, 일상 전체를 흔들 만큼 큰 일로 느껴지지는 않는 편이다. 그런데 이탈리아에서는 아이가 어릴수록 생일잔치가 훨씬 더 자주, 더 크게 삶 안으로 들어온다. 어떤 달에는 한 달 내내 토요일마다 아이들 생일잔치에 가야 할 때도 있다. 그만큼 아이의 생일잔치는 단순한 하루의 이벤트가 아니라, 부모와 아이의 생활 리듬 안에 꽤 큰 비중으로 들어와 있는 일처럼 느껴진다.
이렇게 돌아보면 이탈리아에서 아이들의 생일파티는 단순히 아이 한 명을 축하하는 자리를 넘어서는 것 같다. 아이가 어릴수록 더 자주, 더 길게,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한다. 부모와 조부모, 친척들, 친구들, 친구의 부모들까지 함께 모이면서 생일파티는 자연스럽게 하나의 관계의 장이 된다. 한국과 비슷해 보이지만, 막상 그 안으로 들어가 보면 초대의 방식도, 선물의 감각도, 가족이 개입하는 정도도 조금씩 다르다. 그래서 이탈리아에서 아이를 키우며 생일파티를 여러 번 겪다 보면, 생일을 축하하는 법만이 아니라 이 사회가 관계를 맺는 방식도 함께 보이기 시작한다.
이탈리아에서 아이를 키우다 보면 생일파티처럼 작아 보이는 일들 속에서도 이 사회의 관계 방식이 조금씩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