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이탈리아-가족의 밀도 1
이 글은 결혼 전 처음 시댁에서 주말을 보내며, 이탈리아에서 가족의 밀도를 처음 몸으로 체험했던 시간을 기록한 이야기다.
언어보다 더 힘들었던 건 함께 있음이 당연한 리듬이었고, 그 리듬 속에서 내가 필요로 했던 거리와 호흡을 뒤늦게 이해해가는 과정도 담았다.

결혼 전, 남편 부모님 댁에 처음으로 주말을 보내러 갔을 때였다.
우리 시댁은 집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었다. 이탈리아에서는 그런 거리를 하루 당일치기로 다녀오는 경우가 드물다. 보통은 하룻밤, 이틀 밤, 길게는 며칠을 함께 지내다 돌아온다. 어떤 가족들은 일주일, 이주일씩 머무르기도 한다.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 자랐고, 어릴 때는 나름 삼촌과 이모가 많은 대가족 문화를 경험하며 자랐다고 생각해 왔다. 그래서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이 낯설지는 않다고 여겼다. 그런데 남편의 가족과 함께 지내며 느낀 감각은, 내가 기억하던 한국의 대가족 경험과는 꽤 달랐다.
처음 시댁에서 지내던 시절, 나는 계속해서 어색하고 불편했다. 가장 분명한 이유는 언어였다. 이탈리아어가 아직 서툴러 대화를 온전히 따라가기 어려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깨달았다. 힘들었던 건 언어만이 아니었다.
그곳에서는 혼자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모두 함께 식사를 하고, 정리하고 나면 어느새 점심 준비 시간이 되었다. 점심을 먹고 치우고 나면 각자 흩어지는 대신, 다시 모두 함께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거나 외출을 했다.
누군가 혼자 방으로 들어가 있거나 조용히 떨어져 있으면, 화가 난 건 아닌지, 불편한 건 아닌지 걱정의 눈길이 따라왔다.
하지만 나는 단지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에너지를 회복하기 위한 짧은 고요가 필요했을 뿐인데, 그 선택은 종종 오해로 읽혔다.
중간중간 근처에 사는 친척들이 찾아오면, 또다시 모두가 함께 모였다. 나는 대화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고, 그래서 말보다는 분위기와 표정, 시선으로 상황을 읽어야 했다. 그 과정은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요구했다.
시부모님은 따뜻하고 배려 깊은 분들이었다. 젊은 세대와의 소통에도 열려 있었고, 누군가를 억누르는 분위기는 전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느낀 피로는 사람 때문이 아니라, 이탈리아 가족 문화 특유의 밀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함께 있음이 자연스럽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애정의 표현인 문화. 그 안에서는 혼자만의 공간이나 침묵조차도 설명이 필요한 선택이 된다.
그때의 나는 그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 채 스스로를 자주 탓했다. 왜 이렇게 피곤한지, 왜 감사한 상황에서 숨이 막히는지 설명할 말이 없었다.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것은 적응의 문제도, 배려의 문제도 아닌 서로 다른 리듬의 문제였다는 것을.
이탈리아 가족 안에서의 시간은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가족이란 무엇인지, 함께 있음의 의미는 무엇인지, 그리고 나에게 필요한 거리와 호흡은 어떤 것인지까지.
지금도 그 기억을 떠올리면 복잡한 감정이 남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하나다. 그 불편함은 나의 부족함이 아니라, 서로 다른 문화와 감각이 만났을 때 자연스럽게 생기는 감정이었다는 것.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초반에는 그렇게 힘들기만 했던 이탈리아 가족 문화가 조금씩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이탈리아에서 산 지도 어느덧 십오 년이 넘었다. 그 사이 시댁 부모님 두 분 모두 돌아가셨고, 특히 시어머니는 우리가 결혼한 지 오 년 남짓 되었을 무렵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셨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나는 그분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고 그분 역시 나를 다 이해하지 못한 채 헤어졌다는 생각이 들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그때의 나는 이탈리아 가족 문화가 버겁기만 했다. 내 성향은 변하지 않았지만, 이탈리아에 오래 살면서 그들의 삶의 방식은 점점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함께 있는 시간, 계속 이어지는 대화, 혼자 떨어져 있는 시간을 불안해하던 그들의 태도도 이제는 조금 다르게 보인다.
만약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조금 더 열린 자세로 시댁 부모님과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 것 같다.
특히 늘 따뜻하고 다정했던 시어머니와의 시간이 더욱 아쉽게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