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학교, 멀었던 동행길

이 글은 집에서 5분 거리의 학교를 5년 동안 아이와 등하교하며, 보호와 자립 사이에서 내가 배운 것들을 기록한 이야기다.
이탈리아에서 보호자 동행이 왜 규칙처럼 여겨지는지, 내가 마주친 장면들로 조용히 정리해두었다.

오후, 엄마와 아이가 한께 걸어가고 있고 양쪽으로 유럽 구시가지의 건물들이 줄지어있다. 하늘은 파랗고 구름사이로 태양이 있다

아이의 초등학교 첫날, 남편이 말했다.
가까운 거리지만 당연히 우리가 매일 데려다줘야지. 졸업하는 날까지.
나는 그가 농담을 하는 줄 알았다.

나는 서양 아이들은 더 독립적이고, 일찍 자립한다고 줄곧 듣고 자랐다. 이탈리아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상은 정반대였다. 이곳에서 사는 날이 차오를수록 나는, 보호자가 아이와 늘 동행하는 것이 왜 자연스러운지, 그리고 그렇지 않으면 자립심 기르기가 아니라 방치로 읽힐 수 있다는 것을 조금씩 깨달았다.

학교 앞에서 오가는 이야기

아이가 초등학교에 막 입학했을 무렵, 학교 앞에서 아이를 기다리며 다른 엄마들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종종 있었다. 학부모들은 여러 주제로 이야기를 했지만, 그중 빠지지 않는 주제가 아이들의 안전이었다.

누군가는 학교 옆 공원에서 어제 주사바늘을 발견했다고 말했고, 누군가는 덤불에 깨진 유리가 있더라고 덧붙였다. 공원 후미진 곳에 마약 파는 사람들이 가끔 왔다 갔다 한다는 이야기도, 생각보다 자주 들렸다.

이런 정보는 엄마들 사이에서 마치 생활 정보처럼 공유됐다. 이곳에서는 아이가 어릴 때는 물론이고,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꼭 보호자와 동행하는 것이 일종의 규칙처럼 보였다. 심지어 중학교에 올라가서도 한동안은 아이를 혼자 내보내며 가슴 졸이는 엄마들을 봤다.

공원에서 본 불안

오래전, 아이가 아주 어렸을 때의 일이다. 오후 시간, 아이와 함께 공원에 있었는데, 할머니로 보이는 분이 손주에게 미끄럼틀 타는 법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때 옆에 동유럽 집시로 보이는 엄마와 아이가 미끄럼틀에 합류했다.

할머니가 잠깐 한눈을 판 사이, 아이는 미끄럼틀 뒤쪽으로 돌아가 있었다. 할머니는 아이를 찾기 시작했다. 아이는 반대 방향으로, 할머니는 같은 방향으로 반 바퀴를 도는 바람에 서로 가까이 있으면서도 몇 초간 찾지 못하는 우스운 상황이 되었다.

그 짧은 순간, 할머니의 얼굴이 급격히 변했다. 놀라서 숨이 가빠진 듯했고, 주변을 훑는 눈빛에는 공포가 섞여 있었다. 집시로 보이는 사람들을 향해 시선을 두는 것도 보였다. 마치 그 소문을 떠올린 사람처럼.

나는 그때 생각했다.
아, 아이를 데려간다는 소문이 사람을 이렇게 긴장하게 만드는구나.

그 불안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그 순간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늘 불안이 스며 있었고, 그 불안이 경각심이 되어 있었다.

실제로 이탈리아에서 살다 보면, 치안이 주는 안정감이 충분하지 않다고 느낄 때가 있다. 사건과 사고 이야기가 쉽게 오가고, 그래서 아이를 둔 부모들은 언제나 주의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보호자의 동행은 과보호라기보다, 불안을 다루는 방식에 가까 보였다.

5학년에 시도한 작은 독립

아이가 5학년이 되던 해, 나는 아이에게 조금의 자유와 책임감, 그리고 독립심을 길러주고 싶었다. 한국에서 1년 살아본 경험이 있는 아이는 이미 어느 정도의 자립심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등하교를 스스로 하게 하고, 오후에 혼자 공원에 가는 기회를 조금씩 늘리기 시작했다.

아이는 기뻐했다. 그 무렵 스마트폰도 사줘서 언제든 연락이 가능한 상태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가 느낀 건 아이의 기쁨만이 아니었다. 다른 학부모들의 시선이었다.

그들이 종종 내게 했다던 말은 이런 식이었다. 위험해서 어떻게 혼자 보내냐고, 걱정돼서 아직은 못 보내겠다고. 아이들끼리 버스를 타고 센트로에 간다는 이야기는 상상도 못 하겠다는 반응도 있었다.

몇 번 그런 말을 들으며, 이곳에서 조금 이르게 자유를 주는 일은 유별난 부모 혹은 방임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 엄마들도 결국은 같은 지점에 도착했다. 엄마 키를 훌쩍 넘기기 시작하는 아이들을 보며, 그들도 조금씩 손을 놓는 법을 배웠다. 조금 이르고 조금 늦을 뿐, 결국 모두가 배워야 하는 일이었다.

시간이 지나며 아이는 조금씩 배워갔다. 어떤 시간대는 위험할 수 있다는 것, 어떤 길은 피해야 한다는 것. 작은 길보다는 큰길로 다니는 편이 낫다는 것, 누군가가 무엇을 준다고 해도 함부로 받지 말아야 한다는 것. 그런 감각들을 아이는 몸으로 익혀갔고, 나는 옆에서 같이 배웠다.

아이를 위해 해야 하는 일이 내 상식의 틀을 벗어날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한 번 더 생각했다. 내가 옳다고 믿어온 방식이 아니라, 지금 이곳에서 이 아이에게 필요한 방식은 무엇인지.

다른 엄마들과 늘 같은 선택을 하지는 못했다. 조금 더 일찍 손을 놓아보기도 했고, 조금 더 오래 붙잡아주기도 했다. 그때마다 불안을 달래는 건 결국 결정이었다. 마지막에는 아이를 믿는 마음이었다.

내가 자란 환경과 조건이 다른 곳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건, 내 사고의 틀을 깨는 일이다. 내려놓고, 조정하고, 타협하는 협상의 연속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를 키우며, 나도 함께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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