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서 아이들은 언제나 귀하다

이탈리아에서 살며,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중요한 존재로 대우받는다는 걸 여러 번 보았다.
오늘은 임신 시기부터 출산 이후까지, 내 기억에 남은 존중의 장면들을 조용히 모아본다.

벽이 노란 집에서 어린 남자 아이가 빨간색과 주황색 스트라이프 무늬의 원숭이 인형을 가지고 빨간색 소파 위에서 놀고 있다.

축복을 건네는 문화

임신했을 때, 그 사실은 아주 자연스럽게 주변의 관심이 된다. 배가 조금만 불러 보여도 사람들은 말을 건다. 아름답다는 말과 함께 몸은 괜찮은지 묻고, 아이가 건강하길 바라는 덕담을 건넨다. 그 모든 말들은 과하지 않지만, 자주 반복된다.

사실 그 당시의 나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조금 호들갑스럽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특히 아이를 낳아본 적 있는 여성들이 건네는 축복은 그 밀도가 훨씬 더 진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제 마흔을 넘기고 보니, 그들이 젊은 여성에게 보내던 말들이 삶을 건너온 사람들의 진심이었다는 걸 뒤늦게야 알게 되었다.

임산부에게 양보되는 줄

관공서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탈리아에 처음 정착하던 해, 체류 허가를 위해 퀘스투라(Questura)에 가야 했다. 건물 밖까지 길게 늘어선 줄에는 수많은 이민자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나는 누가 봐도 임신한 상태였다. 남편은 내 손을 이끌고 안내원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사정을 설명했다. 그러자 나는 줄을 선 사람들보다 먼저 안으로 들어가 일을 볼 수 있도록 안내받았다.

솔직히 말하면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이게 맞나, 이래도 되나. 이미 나보다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떠올라, 미안함과 어리둥절한 마음을 안은 채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안내원은 사무 담당자에게 상황을 전달했고, 나는 기다림 없이 업무를 볼 수 있었다. 그 장면은 특별한 호의라기보다 그곳에서는 익숙한 풍경처럼 보였다.

이런 경험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임산부로서 배려받고 있다는 감각은 이탈리아에서 비교적 일관되게 이어졌다. 그 배려는 결국, 아이를 품고 있는 사람과 그 아이 자체를 함께 존중하는 태도처럼 느껴졌다.

동네가 함께 키우는 느낌

아이가 태어난 뒤에는 그 관심이 더 분명해진다.

같은 건물에 아기가 태어나면 이웃들은 자연스럽게 축하 인사를 건넨다. 선물을 주기도 하고, 이후로도 그 아이의 성장을 함께 지켜본다. 이탈리아에서는 이사가 잦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은 한 동네, 한 건물 안에서 오랫동안 같은 얼굴들을 보며 자란다.

길에서 아기를 만났을 때 사람들은 함부로 아이를 만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말을 건다. 아기에게도, 보호자에게도. 그 짧은 인사 속에는 너는 여기에서 환영받는 존재야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 같다. 특히 아이를 키워본 적 있는 아주머니나 할머니들의 시선에서 아이를 향한 깊은 애정을 느낄 때가 많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건 아이와 일의 경계가 유연하다는 점이다. 부모가 가게를 운영한다면 아이를 일하는 공간으로 데려오는 일이 자연스럽고, 사무직이라 하더라도 아이가 아주 어릴 때는 부모가 일하는 곳에 잠시 데려와 동료들에게 소개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세계에서 배제되지 않는다. 어른들 사이에서 자기만의 자리로 존재한다.

아이의 생일, 세례식, 졸업식, 유치원의 작은 행사까지. 부모들은 아무리 바빠도 그날만큼은 시간을 낸다. 반차를 쓰고, 일정을 조정해서라도 아이 곁에 있는 것이 기본처럼 여겨진다.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은 특별한 이벤트라기보다 삶의 일부에 가깝다.

우리 아이가 어렸을 때 우리는 가끔 로드 마켓에 나갔다. 그때도 아이는 늘 함께였다. 놀러 가는 자리가 아니어도, 일을 하는 자리여도 아이와 함께하는 모습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나는 이곳에서 살면서, 아이의 탄생이 가족과 친구뿐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관심을 받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이탈리아에서 아이들은 언제나 귀하고, 중요한 존재로 대우받는다.
그 태도는 큰 소리로 선언되기보다, 일상 속에서 조용히 반복되는 방식으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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