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이중언어 이야기 2
이 글은 한국에서 보낸 1년의 경험 속에서, 이중언어 육아가 중반전에 들어섰다고 느꼈던 순간들을 기록한다. 교재로 시작해 친구를 사귀며 아이의 한국어가 자라던 과정과, 그 안에서 생긴 변화를 담아보았다.

이중언어 육아에는 초반전이 있고, 중반전이 있으며, 아마도 끝나지 않는 연장전이 있을 것이다.
오늘은 중반전에 들어섰다는 걸 실감했던 시간에 대해 기록하고 싶다.
우리가 한국에 머물렀던 시간은 정확히 1년이었다.
그 1년은 우연처럼 주어진 시간이었지만, 돌아보면 아이의 언어에서 가장 큰 방향 전환이 일어난 시기이기도 했다.
한국에 가기 약 3개월 전, 나는 한국에서 아이용 교재 한 세트를 주문했다.
다섯 권으로 구성된 세트였고, 뒤로 갈수록 받침이 있는 단어나 조금 더 어려운 단어, 복잡한 받침이 등장하는 구조였다.
1권과 2권은 이탈리아에서 미리 시작했고, 나머지 3권과 4권은 한국에 도착한 후, 코로나로 2주간 자가 격리 기간 동안 진행했다.
5권까지 모두 다 했는지는 솔직히 기억이 흐릿하다.
중요한 건, 몇 권을 끝냈느냐가 아니라 아이가 한국어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차근차근 밟아 갔다는 점이다.
그때 아이의 나이는 만 9살 6개월쯤이었다.
교재를 통해 아이는 한글을 읽고 쓰는 방법을 체계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아이의 언어 감각은 빠른 편이었지만, 말이 많거나 수다스러운 아이는 아니었다.
한 달, 두 달 만에 언어를 마스터하는 아이는 아니었고, 아주 평범한 속도로 조금씩 한국어를 익혀 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말이 특히 빠르게 늘기 시작한 순간이 있었다.
동네에서 친하게 지낸 애견 미용사인 이모를 만난 이후였다.
아이에게 이모는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고, 강아지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소통의 즐거움을 느꼈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좋아하는 대상이 생기자 아이는 자연스럽게 말하고 싶어 했고, 그 과정에서 언어가 눈에 띄게 늘었다.
또, 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아이에게 친구들이 생겼다.
다행스럽게도 같은 반 아이들이 우리 아이를 무척 좋아했고, 함께 놀고 싶어 했다.
그 아이들과 어울리며 대화하고 놀이를 나누는 과정에서 아이의 한국어는 또 한층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았다.
한 가지, 모든 게 순조롭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이탈리아에서는 반에서 우등생에 속했던 아이였지만, 한국에서는 상황이 달라졌다.
언어에서 또래보다 조금 뒤처지면서, 잘하던 아이가 새로운 나라와 학교에서는 ‘잘하지 못하는 아이’가 되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아이는 스트레스를 느꼈고, 약간의 자신감 상처도 생겼다.
부모로서 안타까웠지만, 동시에 아이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성장하는 과정임을 이해할 수 있는 순간이기도 했다.
돌아보면, 한국에서의 1년은 아이에게 단순히 언어를 배우는 시간이 아니라,
좋아하는 사람과 활동을 만나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자연스럽게 성장하는 시간이었음을 실감한다.
이중언어는 어느 날 갑자기 폭발하듯 늘어나기도 하지만,
사실은 이렇게 조용히, 환경과 시간 속에서 조금씩 방향을 바꾸며 자라는 경우도 많다는 것을 나는 그때 처음 느꼈다.
이중언어 중반전 이야기는 이러하였다.
어쩌면 지금도 아주 긴 중반전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탈리아로 돌아온 아이는 10살 반이 되었고, 9살 반의 모습은 사라졌다.
조금씩 사춘기로 접어들며, 책의 한 단락을 넘기는 듯한 느낌으로 아이가 한국어를 대하는 태도는 조금씩, 그러나 확실히 변하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