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씨시에 갔을 때, 성 프란치스코 바실리카에서는 성 프란치스코 성인의 유해 특별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아씨시는 이미 여러 번 가본 도시였다.
갈 때마다 성 프란치스코 바실리카는 늘 아름다웠고, 그곳에서 내려다보는 풍경도 언제나 좋았다.
그런데 이번에 간 아씨시는 조금 달랐다.
성 프란치스코 성인의 유해 특별 전시가 열리는 기간이었고, 도시에는 평소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하지만 그 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분위기가 들떠있지만은 않았다.
그저 관광을 온 사람들보다, 성인의 유해를 보러 온 순례자 같은 표정을 한 사람들이 더 많아 보였다.
도시는 분주했지만 동시에 차분한 기운도 함께 흐르고 있었다.
이 특별 전시를 보려면 인터넷으로 예약을 해야 했다.
그 예약을 잡는 것도 쉽지 않았다.
며칠 동안 여러 번 시도한 끝에 겨우 두 자리를 확보했고, 남편과 함께 아씨시에 갔다.
바실리카 앞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커다란 흰색 임시 구조물이었다.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사람들은 QR코드를 확인하고 그 안으로 들어가 줄을 섰다.
그곳에서 팸플릿과 함께 작은 종이 한 장을 받았다.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는데, 그 종이에 기도 내용을 적고 유해를 본 뒤 상자에 넣으면 된다고 했다.
사람들은 서로 붙어 서 있었고 글을 쓰기 편한 공간도 아니었다.
처음에는 쓸까 말까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결국 남편도 나도 짧게 기도문을 적기 시작했다.
그 순간이 오히려 가장 깊게 남았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 웅성거림이 계속되는 가운데, 눈을 뜬 채 마음을 모아 기도문을 쓴다는 것이 묘하게 집중되는 일이었다.
안내 방송이 나오자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동시에 펜을 들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팸플릿 안에 기도문을 적는 종이가 들어 있을 것이라고 미리 알고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서로에게 볼펜을 빌리고, 또 빌려주면서 서 있는 자리에서 기도문을 썼다.
누군가는 옆 사람에게 조용히 펜을 건네고, 누군가는 급히 몇 줄을 적고, 또 누군가는 작은 종이를 손에 든 채 잠시 생각에 잠겨 있었다.
곧 성인의 유해를 보게 될 사람들이 그 짧은 기다림 속에서 서로 펜을 빌려 가며 기도문을 쓰는 모습은, 이상할 만큼 인간적이면서도 경건해 보였다.
그리고 그때 내가 손에 쥐고 있던 펜도 내게는 조금 특별했다.
내가 손에 쥐고 있던 펜은 남편의 작은아버지였던 신부님의 유해품이었다.
그분은 재작년에 돌아가셨다.
종교와는 거리가 멀었던 내가, 프란치스코 성인의 유해를 보기 위해 바실리카 앞에 서서 그 신부님이 남긴 펜으로 기도문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 그 순간에는 이상하게도 우연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나는 내가 그런 자리에 서게 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신부님의 유해품인 펜을 손에 쥔 채 많은 사람들 사이에 서서, 프란치스코 성인을 보기 전 기도문을 쓰고 있을 거라고는.
줄은 천천히 앞으로 움직였고 결국 바실리카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사람들은 조용히 줄을 따라 걸어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앞쪽 유리관 안에 놓인 프란치스코 성인의 유해가 보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작았다.
두개골도, 뼈 조각들도 놀랄 만큼 작아 보였다.
나는 그 작음에 먼저 놀랐고, 그 앞에서 잠시도 멈출 수 없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유리관 양옆에는 안내원이 서 있었고 사람들은 계속 앞으로 걸어가야 했다.
정말 몇 초뿐이었다.
그 몇 초 동안 가족을 위한 짧은 기도를 하고, 이미 써 두었던 기도문을 상자에 넣고 바깥으로 나왔다.

사실 나는 기대를 많이 하고 갔었다.
그래서인지 보고 난 뒤에는 조금 이상한 기분이 남았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마음은 분명 진지해 보였고, 그 길을 걸어가는 동안의 분위기도 충분히 경건했다.
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순간은 너무 짧고 매끄럽게 지나가 버려서, 어딘가 형식적인 느낌도 함께 남았다.
아씨시에서 본 프란치스코 성인의 유해는 아주 작은 뼈 조각들이었고, 그것을 바라본 시간은 몇 초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게 더 오래 남은 것은 그 몇 초보다, 바실리카 앞에서 사람들이 서로 펜을 빌려 가며 기도문을 쓰던 장면과 내가 그 신부님의 유해품인 펜을 손에 쥐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