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이탈리아 아이 생일파티 문화 2
이탈리아에서 아이들 생일파티를 몇 번 겪다 보면, 단순히 아이 한 명의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가 아니라는 걸 느끼게 된다. 케이크 한 조각을 나누는 순간부터 누가 오고, 얼마나 머물고, 어떻게 대접하는지까지 그 안에는 이 사회가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방식이 함께 드러난다.

케이크 한 조각에서 배운 것
우리 아이가 네 살쯤 되었을 때였다. 유아원 동기생이었던 아이의 부모에게 처음으로 집에서 열리는 생일 초대를 받았다. 그 전까지는 늘 유아원 안에서 아이들과 선생님이 함께 생일축하를 했기 때문에, 누군가의 집에 가서 아이 생일파티에 참석하는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아이들이 놀고 시간이 지나 파티가 마무리될 무렵 생일케이크가 나왔다. 나는 그날 몸이 좋지 않아 주최한 엄마가 케이크가 담긴 접시를 권했을 때 괜찮다고 거절했다. 그런데 그 순간 주최한 엄마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는 것을 봤다. 그때는 이유를 몰랐다.
나중에야 조금씩 알게 됐다. 이곳에서 생일에 초대받아 갔을 때 케이크를 받는 일은 단순히 디저트를 먹는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을.
몇 년 뒤 비슷한 장면을 다시 본 적이 있다. 아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친구 집 생일잔치에 갔는데, 파티가 거의 끝날 무렵 한 부모가 아이를 데리러 왔다. 케이크가 그 부모에게도 돌아갔지만, 그중 엄마가 다이어트 중이라며 케이크가 담긴 접시를 거절했다. 그 순간에도 나는 생일을 연 엄마의 표정이 아주 미묘하게 굳는 것을 느꼈다.
그때는 더 분명하게 보였다. 여기에서 케이크를 받는 일은 배가 고프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 자리에 함께 있는 것이 편안하고 즐겁다는 표시에 더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 이어지는 파티와 사교의 시간
이탈리아에서 생일파티를 몇 번 겪다 보면 또 하나 느끼는 것이 있다. 여기에서는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능력을 꽤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도 물론 그런 능력이 필요하지만, 이곳에서는 그 밀도가 조금 더 진하게 느껴진다.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이야기하고 떠들썩하게 어울리는 일이 삶 속에서 훨씬 자주 일어난다. 흔히 이탈리아 사람들은 말을 좋아하고 많이 한다고들 말하는데, 실제로 정말 그런 순간들이 많다.
이탈리아에서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고 그 자리에 편안하게 섞여 있을 수 있는 능력이 꽤 요구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왜냐하면 여기에서 어떤 모임이나 행사는 생각보다 훨씬 오래 이어지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아이들 생일잔치라고 하면 아이들이 조금 놀다가 간식을 먹고 케이크를 나누고 나면 비교적 금방 헤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같은 생일파티라도 훨씬 길게 이어진다. 두 시간이면 끝나겠지 하고 가 보면 네 시간이 지나 있고, 오늘은 네 시간 정도면 끝나겠지 싶으면 어느새 여섯 시간, 여덟 시간이 지나 있기도 한다.
그래서 그 긴 시간 동안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능력이 생각보다 중요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생일파티가 보여주는 집의 방식
아이들의 생일파티도 그렇다. 겉으로 보면 단순한 생일잔치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꽤 많은 것들이 드러난다.
어디에서 생일파티를 하는지, 몇 명을 초대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을 대접하는지 같은 것들이다.
누군가는 집으로 많은 사람을 초대한다. 그렇게 하려면 집이 어느 정도 넓어야 하고 여러 가족이 함께 모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정원이 있는 집이라면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다. 또 어떤 집은 본인 집이 아니라 정원이 넓은 조부모님 집으로 사람들을 초대하기도 한다.
반대로 집이 크지 않은 경우에는 아이들 파티를 전문적으로 하는 공간을 빌리기도 한다. 이런 곳에서는 아니마치오네를 불러 아이들과 함께 게임을 하거나 페이스 페인팅 같은 활동을 준비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넓은 야외공간이 있는 레스토랑에 아이의 친한 친구들과 부모님들을 초대하기도 하고, 또 흔하지는 않지만 어떤 집은 공원에서 조금 더 편안하게 생일을 보내기도 한다.
선물 같은 것을 크게 생각하지 않고, 평소 공원에서 자주 만나던 아이들과 부모들이 자연스럽게 모여 간단한 음식을 나누는 식이다.
아이들의 관계는 가족의 관계로 이어진다
여기에서는 아이들의 교우관계가 아이들 사이에서만 끝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아이가 친구를 사귀면 그 관계가 부모들 사이의 교류로 이어지고, 때로는 형제자매까지 함께 오가게 된다.
그래서 생일잔치에 아이만 가는 것이 아니라 온가족이 함께 움직이는 일도 꽤 자연스럽다. 아이 친구의 생일인데도 부모와 형제자매까지 함께 오는 풍경이 낯설지 않다.
생일파티는 아이들만 노는 자리가 아니라, 여러 가족이 함께 모이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환대 뒤에 있는 노동
한편으로는 그런 자리가 누군가에게는 큰 노동처럼 보일 때도 있었다.
어떤 집에서는 정말 이걸 이 엄마 혼자 어떻게 다 준비했을까 싶을 정도로 엄청난 양의 음식을 다양하게 준비하기도 했다. 손님을 맞고, 아이들을 챙기고, 음식을 계속 내놓느라 끊임없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눈에 띄게 지쳐 보일 때도 있었다.
말을 하고는 있었지만, 너무 바쁘고 힘들어서 잠시 영혼이 빠져나간 것처럼 보일 때도 있었다.
생일잔치는 즐거운 행사이지만,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상당한 체력과 에너지를 요구하는 일이기도 해 보였다.
가장 부유한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 번은 우리 도시에서 가장 부유하다고 알려진 집의 생일파티에 초대된 적이 있었다. 큰 정원과 수영장이 있는 빌라에서 열린 파티였고, 초대된 사람도 아주 많았다. 체감으로는 백 명이 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 집이라면 우리는 흔히 누군가가 다 준비해주고 주최한 부모는 비교적 편안하게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 집 엄마 역시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사람들을 맞고, 음식을 챙기고, 아이들을 살피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느라 정말 바빠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면서 생일파티라는 것이 단순히 돈으로 해결되는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일파티가 보여주는 이 사회의 방식
여러 번 생일파티에 가보니 이런 자리들은 단순히 아이의 생일을 축하하는 행사만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사람들을 초대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이야기하고, 서로의 소식을 나누는 자리다. 어떤 집에서는 그 자리에서 정보를 나누기도 하고, 어떤 집에서는 오랜 관계를 다시 확인하기도 한다.
어쩌면 이런 문화는 꽤 오래 이어져 온 것인지도 모른다. 이탈리아에서는 결혼식만 봐도 그렇다. 한국에서는 결혼식이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끝나는 경우가 많지만, 여기에서는 훨씬 길게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열두 시간, 혹은 하루 가까이 이어지는 결혼식을 경험했다는 이야기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그래서 이곳에서 생일파티나 결혼식 같은 행사는 단순한 이벤트라기보다 사람들과 어울리고 관계를 확인하는 하나의 장처럼 보일 때가 있다.
그 안에는 환대도 있고, 축하도 있고, 노동도 있고, 서로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려는 마음도 섞여 있다. 그리고 그런 모든 것들이 한 자리에 함께 놓여 있는 것이, 어쩌면 이 사회의 한 단면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