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육점 앞에서의 이탈리아어 레슨

이 글은 이탈리아에서 아이를 키우며, 아이가 엄마의 서툰 이탈리아어를 고쳐주기 시작했던 순간에 대한 이야기다.
정육점 앞의 작은 장면을 통해, 아이가 나보다 먼저 이 언어 안으로 들어가고 있음을 처음 실감했던 기억을 담았다.


이탈리아에서 아이를 키우다 보면 아이가 두 언어를 넘나드는 변화는 천천히, 하지만 아주 자연스럽게 온다. 그래서 그 순간들을 지날 때는 별일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서야 그것들이 작은 전환점들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지금도 기억나는 한 장면이 있다. 아이가 만으로 다섯 살쯤 되었을 때, 함께 정육점에 갔던 날이었다. 그때 내 이탈리아어는 아직 초급 수준이었다. 특히 남성명사와 여성명사가 늘 헷갈리던 때였다. 가게 안에는 여자분이 고기를 팔고 계셨는데, 나는 별생각 없이 buongiorno signore라고 인사했다.

그 순간 바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평소처럼 고기를 사고 계산을 했다. 인사를 하고 뒤돌아 나오는 순간 아이가 내게 말했다. 엄마, 그분은 여자분인데 왜 signore라고 했어. 그건 남자한테 하는 말이잖아.

나는 어, 그래? 내가 실수했구나 하고 아이에게 말했다. 아이 말이 맞았다. 내가 틀렸다. 그런데 더 오래 남은 건 틀린 인사말 자체가 아니었다. 아이가 그걸 너무 자연스럽게 알아차리고, 내게 말해주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때 처음 느꼈다. 아이가 어느새 나보다 이 언어에 더 익숙해졌고, 이제는 내 말을 바로잡아줄 수도 있는 자리에 와 있다는 것을.

나는 이탈리아어를 할 때 여전히 말을 꺼내기 전에 머릿속으로 한 번 더 확인해야 했다. 이 명사가 남성인지 여성인지, 이 표현이 맞는지, 발음이 너무 어색하지는 않은지 잠깐씩 멈추곤 했다. 그런데 아이는 그렇지 않았다. 아이에게 이탈리아어는 이미 너무 자연스러운 말이었다. 내가 아직 배우고 있는 언어를, 아이는 그냥 살아가며 쓰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그 변화는 갑작스럽지 않았다. 처음에는 나와 한국말로 의사소통을 하던 아이가, 어느 순간부터 물건 이름 같은 아주 일상적인 단어들을 이탈리아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짧은 문장들도 자연스럽게 늘어갔다. 그래서 어느 날 문득 돌아보면, 아이는 이미 이탈리아어를 한국어보다 훨씬 더 자연스럽게 구사하고 있었다. 아이에게 어느새 이탈리아어는 삶의 언어가 되었고, 한국어는 엄마와 연결되는 다리가 되었다. 정육점 앞에서 내가 놀랐던 것도 바로 그 변화였다. 아이는 어느새 엄마의 이탈리아어를 고쳐줄 만큼 이 언어 안으로 들어가 있었다.

부모는 대개 아이보다 먼저 알고, 먼저 설명하고, 먼저 길을 보여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언어가 둘인 집에서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 어떤 부분에서는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가지만, 또 어떤 부분에서는 아이가 더 빨리 앞으로 나아간다. 아이를 통해 언어를 배우고, 아이의 언어가 자랄수록 엄마의 언어도 그 곁에서 함께 자란다.

정육점 앞에서 아이가 내 말을 바로잡아주던 순간도 그랬다. 민망하기도 했고, 대견하기도 했고, 어딘가 조금 이상하기도 했다. 내가 이 아이를 이곳으로 데려온 줄 알았는데, 어떤 순간에는 아이가 이미 나와는 다른 자리에서 이 사회 안으로 한 걸음 들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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