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동아들과 공원의 할머니

이 글은 한여름 공원에서 만난 할머니의 말 한마디가 시간이 지나 다른 의미로 돌아오는 과정을 따라가며, 외동이라는 선택을 조용히 되짚어본 기록이다. 둘째를 둘러싼 표준과 시선 속에서, 각자의 사정으로 내린 선택과 시간이 지나며 달라진 감정의 결을 담아두었다.

나무와 농구경기장이 있는 공원의 벤치에 앉아있는 아이의 옆모습

여름이었다. 햇빛이 너무 뜨거워서 공원 안에서도 그늘을 따라 움직이게 되는 날이었다.

남편은 바빴고, 나는 아이를 데리고 혼자 공원에 갔다. 나무 그늘이 얹힌 벤치에 앉았을 때, 아주 나이가 많아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내 옆에 앉았다. 손주와 함께 온 듯했다.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 중소도시의 공원에서, 이탈리아 사람들은 친절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낯선 사람에게는 조심스러운 면도 있다. 그래서 더 의외였다.

할머니는 내게 이것저것 물었다. 어디서 왔는지, 아이는 몇 살인지. 대화는 자연스럽게 흘렀고, 나는 적당히 웃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할머니가 갑자기 당부를 하기 시작했다. 아이를 한 명 더 낳으라고. 자기는 아이가 한 명뿐이었는데, 나이가 많이 들고 나니 그게 너무 후회된다고, 꼭 한 명 더 낳으라고 했다.

처음에는 그저 예의 있게 받아줬다. 하지만 할머니의 말이 길어질수록 내 안에서 불편함이 올라왔다. 남의 사정도 모르면서 왜 이렇게까지 말할까. 그때의 나는 이미 지쳐 있었고, 한 명을 키우는 일만으로도 매일이 꽉 차 있었다.

아이는 여섯 살이었다. 이탈리아에서 여섯 살은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나이. 이제야 유아기를 지나 한숨 돌릴 수 있을 것 같은 시기였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남편은 일로 바빴고, 나도 일하면서 아이를 돌봤다. 주변에 도와줄 친척은 없었다. 누구 하나 손을 내밀어줄 사람이 없는 곳에서, 때때로 삶을 산다기보다 매일을 버티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내 결론은 단단했다. 내 인생에서 아이는 한 명이다. 둘째는 내 인생을 갈아 넣는 일이다.

조금 뒤 할머니의 며느리로 보이는 사람이 왔고, 할머니는 손주와 함께 돌아갔다. 그 후로 그 할머니를 다시 만난 적은 없다. 나는 그늘 아래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할머니의 말이 남았지만, 나는 그 말에서 나를 지키려고 했다. 그분도 그분의 삶이 있었겠지. 하지만 내 삶은 내 삶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아이가 여덟 살, 아홉 살쯤 되었을 때였던 것 같다. 집에 돌아온 아이가 유난히 언짢아 보였다. 얼굴에는 화남과 서운함이 그대로 떠 있었다. 비교에서 진 것 같은 표정이었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학교에서 형제자매 이야기가 나왔고 그날 아이가 알게 되었다고 했다. 반에서 형제자매가 없는 사람은 자기와, 한부모 가정에서 자라는 어떤 여자아이, 단 두 명뿐이었다고.

그때 나는 외동인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데, 다른 반에는 또 있을 거야, 라고 말해줬다. 외동이라 좋은 점도 설명해줬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 아이가 자신이 외동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다른 아이들은 다 갖고 있는 어떤 것을 자기는 갖지 못했다고 생각한다는 걸 나는 감지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때 둘째를 생각하기보다는, 아이가 조금 더 자라면 함께 여행하고, 나도 조금은 자유를 되찾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더 컸다. 그 기대가 그 시절의 나를 버티게 했다.

아이의 나이가 차오르면서, 내 마음도 함께 바뀌었다. 열 살을 지나 열한 살, 열두 살. 십대의 문턱이 가까워질수록, 나는 가끔 아주 이상한 생각을 했다.

둘째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새로운 생명이 주는 기쁨과 사랑이 있다. 첫째가 어렸을 때 나는 그것을 충분히 누리지 못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초보 엄마로 하루하루를 버티느라, 예쁘다는 감정도 숨이 차서 넘어가던 날들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 시절의 빛을 뒤늦게 알아보는 순간이 왔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내가 공원에서 만났던 그 할머니와 비슷한 말을 내 마음속에서 하고 있다는 것을.

웃기고도 조금 씁쓸했다.

이 도시에는 보이지 않는 표준이 있다. 첫째를 낳고, 두세 해 안에 둘째를 갖는 리듬. 흔히 세 살 터울. 누군가는 그 표준을 따라 살아가고, 누군가는 그러지 못하고, 누군가는 애초에 다른 선택을 한다. 외동을 선택한 집도 있고, 아이가 많은 집도 있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때의 나는 정말 어려웠다는 것을. 그 시절에 둘째를 갖는 것은, 내게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는 것을.

한 사람의 말은 어떤 때는 부담이 되고, 어떤 때는 시간이 지나 뒤늦게 의미가 된다. 삶은 가끔 그렇게 늦게 도착하는 감정들을 데리고 온다.

그날 공원에서 들었던 말도 그랬다. 그때는 잔소리 같았고, 남의 사정도 모르는 조언처럼 들렸다. 그래서 나는 그 말에서 나를 지키려고 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아이가 자라고, 나도 더 나이가 드니 어느 순간 그 말이 문득 이해가 되었다. 공원의 할머니는 아마 누군가만은 자신과 같은 후회를 하지 않길 바라며 내게 말을 건넸을 것이다. 후회가 있으면 사람은 자꾸 같은 문장을 꺼내게 되지 않나.

나는 이제 안다.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안에는 각자의 사정과 체력과 사랑의 방식이 들어 있다는 것을. 선택과 후회와 기쁨과 힘듦이 섞여서 한 사람의 서사가 된다. 그리고 그 서사는, 완벽해서가 아니라 그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어서 아름답다.

그래서 가끔은 생각한다. 우리가 서로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말은, 누군가를 움직이게 하는 조언이 아니라 그냥 그 사람의 삶이 그 사람의 속도로 흘러가도록 조용히 자리를 내주는 일인지도 모른다고. 그늘 아래 벤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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