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서는 아이가 조금 아파도 쉬게 하는 이유

이 글은 아이가 조금 아파 보이던 아침, 한국에서 자란 나의 기준과 이탈리아식 돌봄의 기준이 부딪혔던 순간을 담담하게 기록한다. 참고 학교에 보내는 습관과 집에서 쉬게 하는 선택 사이에서 흔들렸던 마음을 조용히 따라가본다.

빨간색 소파 위에 노란색 꽃무늬 쿠션 앞에 귀여운 인형이 있다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던 어느 아침이었다.
컨디션이 아주 약간 안 좋아 보였다.

내 눈에는 그저
아침잠이 덜 깬 얼굴,
평소보다 조금 더 칭얼대는 정도였다.

그런데 남편은 아이의 눈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말했다.
아이 눈이 평소보다 조금 더 촉촉해 보인다고.
아마도 열이 있을 거라고.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조금 피곤해 보일 뿐인데,
이 정도면 가도 되지 않나?

어차피 점심도 집에 와서 먹고,
아침에 유치원에 가서 친구들이랑 놀면
시간도 금방 갈 텐데.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그날은 월요일이었다.

주말 동안 쌓인 피로를 풀기 위해
나는 사실 아이와 잠깐의 떨어짐이
간절히 필요했다.

밀린 집안일도 하고,
시장도 보고,
무엇보다 나 스스로를
조금 리셋하고 싶었다.

그런데 남편은 단호했다.
아이가 아픈데,
당연히 집에 있어야 한다고.

나는 그 말에 깜짝 놀랐다.

‘이 정도로도 안 보낸다고?’

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한국에서 자란 나에게
학교나 유치원은
웬만하면 가는 곳이었다.

나는 초중고 12년을 통틀어
한 손에 꼽을 만큼만 결석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할 정도가 아니면
학교에 가는 게 기본이었고,
조금 불편해도 참고 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배웠다.

그런데 남편의 이야기를
하나둘 듣다 보니
이건 개인 성향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남편은 어릴 때
조금이라도 아프면
유치원이나 학교에 가지 않았다.

열이 아주 조금만 나도
가지 않는 것이
기본 원칙이었다고 했다.

이유는 분명했다.

열이 있다는 건
몸에 염증 반응이나 감염이 있다는 신호이고,
그건 다른 사람에게 옮길 수도 있기 때문이며,
무엇보다 아이는 그럴 때
스스로 몸을 회복하고
보호자로부터
충분한 돌봄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학교보다 먼저 오는 것

학교보다,
규칙보다,
아이의 몸 상태가 먼저였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나는 마음 한구석이
계속 불편했다.

‘이 정도까지?’
‘조금 예민한 거 아닐까?’
‘조금 아프다고 자꾸 결석하면
나중에 정신력이 약한 사람이
되지는 않을까?’

라는 생각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탈리아에서 아이를 키우며
나는 점점 알게 되었다.

이곳에서 아이는
강함과 의지를 길러야 하는
훈련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과 돌봄의 대상이라는 것을.

아이를 사회의 틀에 맞추기보다는
사회의 리듬이
아이에게 맞춰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도.

아이가 조금이라도 아프면
유치원에 가지 않는 것은
아이를 보호하기 위한 선택이자
다른 아이들을 배려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아이에게

“너의 몸 상태는 중요하다.”
“너는 소중한 존재다.”

라는 메시지를
반복해서 전하는 일이기도 했다.

나는 여전히 가끔 헷갈린다.

이 정도면 괜찮지 않나,
조금은 무리해도 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불쑥 올라올 때가 있다.

사실 나는 아직도
조금 아프거나 열이 나도
이 정도 피곤함에
침대에 가서 쉴 수는 없다며
내 몸의 신호를 자주 무시한다.

그러다 몸이 또렷하게 아파지고 나서야
아, 내가 아까부터 아팠구나
하고 깨닫는다.

아마도 어렸을 때
몸의 신호를 알아차리고
마음 놓고 쉬는 방법을
배운 적이 없어서일 것이다.

그렇다고
강한 정신력과 굳건한 의지가
전혀 필요 없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아직도
어떤 방식이 더 나은지
사실 잘 모르겠다.

두 가지를
적절히 섞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가운데 길을 걷는 일은
언제나 가장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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