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이탈리아-가족의 밀도 2
이 글은 임신 막달에 시부모님과 시댁 식구들이 우리 집에 머물렀던 여름을 돌아보며, 내가 느꼈던 이탈리아 가족의 밀도에 대해 기록한 이야기다.
그때는 불편함과 긴장이 먼저였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들의 방식이 문화이며 배려였다는 걸 뒤늦게 이해하게 된 과정도 함께 담았다.

막달
남편과 결혼한 지 두 달쯤 되었을 때, 나는 임신했다. 11월쯤이었고, 아이는 다음 해 8월에 태어날 예정이었다. 그때 나는 이탈리아 생활 1년 조금 넘은 상태였고, 문화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했다.
더위가 절정에 이르는 8월 초, 남편이 말했다.
우리 가족은 여름마다 다 같이 모여 1~2주 정도 함께 지내. 이번에는 우리 집에서 모이기로 했어. 8월 중순에 부모님과 누나, 동생이 우리 집에 올 거야. 너를 도와주고, 아기가 태어나면 아기도 보고 싶어 하실 거야.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설렘과 동시에 여러 생각이 스쳤다.
아, 시부모님이 오시는구나. 그런데 잠자리와 식사는? 나는 어디서 글을 써야 하지? 어색하지는 않을까?
임신 막달에 배가 부풀어 있는 상태였기에, 신체적으로도 꽤 힘든 시기였다.
그해 여름, 나는 가족이 함께 보내는 이탈리아식 문화와 산모에게 표현되는 관심과 애정이 한국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몸소 깨닫기 시작했다.
하루
실제로 시부모님께서 우리 집에 도착했다. 처음에는 기뻤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머릿속과 마음은 복잡해졌다. 내가 아이를 낳으러 병원에 가는 동안, 시누이 둘과 조카도 우리 집에 머물렀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는 이렇게 맴돌았다.
내가 없는 우리 집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다니…
초반에는 시부모님과 단둘이, 혹은 셋이서 집에 있는 상황 자체가 어색했다. 잠깐 누워 쉬고 싶은 마음, 마음대로 헝클어진 상태로 있고 싶은 마음은 쉽게 충족되지 않았다.
한국에서 자란 나는, 아무리 산모라도 어른들 앞에서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고 배웠다. 게다가 당시 한국 잡지에 기고할 글 두 편을 준비하고 있었기에, 시부모님이 계신 집에서 집중하며 일을 해내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야 알게 된 것도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산모가 조금 헝클어져 있어도, 시댁 어른 앞에서 누워 있어도 크게 문제 삼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
시부모님과 함께한 그 여름이 아주 뚜렷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다. 조금 힘들고 불편했던 기억이어서일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내가 아이를 낳고 집에 돌아왔던 날, 아기가 늦게 태어나 시부모님과 시누이들, 조카는 이미 집으로 돌아간 상태였다. 식탁 위에는 조카가 예쁘게 장식한 종이가방 안에 아이를 위한 선물이 가득 들어 있었다. 고마움과 미안함이 섞여 짠한 마음이 들었다.
러너
시어머니는 내가 살림 경험이 적다는 것을 알고, 우리 집을 정리하고 예쁘게 꾸며 주고 싶어 하셨다.
예를 들어, 식탁 위에 러너를 깔고 과일 바구니를 올리는 것은 이탈리아 가정의 기본 예법이자 장식 방식이다. 하지만 나는 그때 그런 문화에 대해 알지 못했고, 컴퓨터를 놓고 글을 써야 하는 나에게는 러너가 조금 거슬리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별것 아닌 일이지만, 당시에는 마음이 복잡했다.
재미있는 건, 그 러너가 지금도 우리 집 식탁 위에 그대로 깔려 있다는 점이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나는 어느 순간부터 다시 그 러너를 꺼내 식탁에 놓았다. 화분이나 화병을 올려 장식하며, 러너를 볼 때마다 시어머니를 떠올리게 된다.
뒤늦음
내가 그때 이탈리아 문화와 시부모님께 지켜야 하는 예절을 조금만 더 알았다면, 시간이 덜 힘들고 더 즐거웠을 것이다. 시부모님, 시누이, 조카와 함께한 시간은 앞으로 몇 번 되지 않을 순간이라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면 마음이 훨씬 편했을 것이다.
돌아보면, 그분들이 우리 집에 오신 것은 나를 도와주고 아기를 보고 싶어 하신 것이었다. 가족과 함께 소중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이탈리아 문화임을 이해하게 되었고, 그분들의 배려와 함께하는 방식은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경험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