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마는 오랫동안 나에게 목적지가 아니었다.
늘 어딘가로 가기 위해 지나쳐야 하는 도시였다.
이탈리아에 산 지 16년이 넘었지만, 남편과 둘이 로마에 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정말 그랬다. 로마는 공항을 가기 위해, 기차를 타기 위해, 다른 도시나 다른 나라로 이동하기 위해 들르는 곳에 가까웠다. 잠깐 지나가기는 했지만, 마음을 두고 바라본 적은 거의 없었다.
사실 로마에 대한 기대도 크지 않았다. 관광객들이 상상하는 로마와, 이탈리아 안에서 사람들이 말하는 로마는 조금 다르다. 로마는 크고 복잡하고, 차가 많고, 늘 붐비는 도시다. 관광객이 많은 만큼 소매치기를 조심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자주 들리고, 한동안은 쓰레기 문제로 지저분하다는 인상도 강했다. 남편도 나도 “로마니까 꼭 가고 싶다”기보다는, 오랜만에 둘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사실에 더 설렜다.
아이에게 3일 정도 운동 토너먼트 일정이 생겼고, 그 틈에 남편과 나는 짧게 로마에 다녀오기로 했다.
첫날은 오후에 도착해 산피에트로 대성당을 보고, 다음 날은 나보나 광장 근처 앤틱 거리와 시스티나 성당이 있는 바티칸 뮤지엄을 둘러보고, 셋째 날 아침에는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길게 머무는 여행은 아니었다. 그래도 우리에게는 꽤 특별한 시간이었다.
생각해보면, 이번 로마 여행에서 좋았던 순간은 로마로 향하던 차 안이었다. 5월의 날씨는 따뜻했고, 차 안에서는 좋아하는 음악이 흘렀다. 운전 시간은 두 시간 정도라 부담스럽지 않았고, 걱정했던 것과 달리 길도 많이 막히지 않았다. 오랜만에 둘이 차를 타고 새로운 곳으로 간다는 사실이 좋았다.
숙소는 바티칸 근처 프라티 지역에 잡았다. 정확히는 Prati와 Delle Vittorie 쪽 분위기가 섞인 동네였다. 관광지 한가운데라기보다는 실제로 사람들이 많이 사는 도시의 얼굴이 보이는 곳이었다. 큰길에는 차와 오토바이가 빠르게 지나갔고, 건물들은 크고 반듯했다. 오랜만에 “큰 도시” 안으로 들어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로마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의외로 건물들이었다. 유명한 유적이 아니라, 그냥 사람들이 사는 일반 건물들이었다. 그런데도 멋있었다. 아기자기하다기보다는 힘이 있었고, 직선이 많고, 층고가 높고, 도시 전체가 어떤 질서와 무게를 가진 것처럼 보였다. 로마에 대한 인상이 바뀌고 있었다.
첫날 우리는 미리 예약해둔 산피에트로 대성당에 들어갔다. 오래전에 한 번 가본 적이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기억나는 것은 광장에서 보안 검색을 기다리던 줄뿐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본 산피에트로 대성당은 전혀 다른 공간처럼 느껴졌다.
성당 안은 거대했고, 화려했고, 장식은 끝이 없었다. 대리석, 조각, 천장, 기둥, 빛, 공간의 크기. 유럽에는 아름다운 성당이 많지만, 산피에트로 대성당은 그 아름다움의 규모가 달랐다. 아름답다는 말보다 압도적이라는 말이 먼저 떠올랐다.

바티칸은 나에게 성스러운 장소라기보다, 신앙이 가졌던 힘과 그 힘이 만들어낸 세계를 눈으로 마주하는 곳에 가까웠다. 이 정도의 공간은 단순한 믿음만으로 만들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권력, 돈, 시간, 기술, 그리고 수많은 사람의 손이 함께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 안에서 내가 오래 생각한 것은 오히려 예술가와 장인들이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기 시간과 재능을 그곳에 쏟아부었을까. 얼마나 많은 손이 대리석을 다듬고, 프레스코화를 그리고, 조각을 만들고, 높은 곳에 올라가 천장을 채웠을까. 그 사람들의 수를 내가 헤아릴 수는 없지만, 그들이 남긴 흔적 앞에서는 자연스럽게 경외감이 들었다.
다음 날 바티칸 뮤지엄에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바티칸 뮤지엄은 내가 지금까지 가본 어떤 미술관과도 달랐다. 작품을 하나씩 감상한다기보다, 장식과 역사와 신앙이 겹겹이 쌓인 공간을 계속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벽과 천장에는 프레스코화가 이어졌고, 방을 지날 때마다 또 다른 화려함이 나타났다. 아름다운 공간 뒤에 또 다른 아름다움이 기다리고 있는 특별한 공간이었다.

시스티나 성당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꽤 많이 걸은 뒤였다. 그 공간은 생각보다 어두웠고, 사람은 정말 많았다. 모두가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처음 들어간 사람은 천지창조가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바로 알기 어렵다. 나도 잠깐 헤맸다. 누군가에게 묻기도 조금 민망했다. 모두가 너무 진지하게 고개를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장면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요즘 사람들은 어디서나 휴대폰을 보느라 고개를 아래로 숙인다. 그런데 그 안에서는 모두가 고개를 들고 있었다. 마치 하늘에 무엇인가 나타나기라도 한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 천장을 보고 있었다. 조금 웃기기도 했고, 또 이상하게 아름답기도 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먼 나라에서 비행기를 타고 와서, 결국 하나의 그림과 하나의 공간을 보기 위해 바티칸 뮤지엄 깊숙이 위치한 그곳에 서 있었다. 작품의 기술적인 대단함을 내가 제대로 설명할 수는 없다. 그림은 높은 천장에 있었고, 사람은 많았고, 공간은 어두웠다. 그런데 그곳에 모여 있던 사람들의 열정은 분명히 느껴졌다. 아름다운 것을 보려고 기대를 품고, 계획을 세우고, 긴 시간을 비행해 바티칸 뮤지엄의 맨 끝에 있는 이곳까지 온 사람들의 마음 같은 것 말이다.
로마는 내가 예상하지 못한 기쁨도 선사했다. 괜찮은 식당을 찾아낸 것이다. 우리 아이는 사춘기에 들어선 뒤로 몇 년째 우리와 밖에서 외식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우리 가족은 자연스럽게 외식을 거의 하지 않게 되었다.
숙소 근처에서 우연히 괜찮아 보이는 오스테리아를 발견했다. Il Lume – Osteria alle Scalette라는 곳이었고, 위치는 Via Vittor Pisani 12, Prati/Delle Vittorie 근처였다. 남편과 나는 원래 여행지에서 레스토랑에 대한 기대치를 조금 낮추는 편이다. 괜찮은 레스토랑을 찾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곳에서 먹은 두 번의 저녁 식사는 참 오랜만에 만족스러운 외식으로 남았다.
프라티의 아침도 기억난다. 노동절이 낀 주말이었고, 숙소 근처의 평범한 카페에는 동네 사람들로 가득했다. 특별히 멋진 인테리어가 있는 곳은 아니었다. 그냥 동네에 하나쯤 있을 법한 평범한 카페였다. 그런데 그 안에 로마 사람들이 있었다. 커피를 마시고, 인사를 나누고, 주말 아침을 보내는 사람들. 그런 평범한 장면에서 오히려 도시의 정서가 더 잘 느껴질 때가 있다.

로마에서 뜻밖에 아름답다고 느낀 것 중 하나는 길 위의 작은 꽃가게들이었다. 에디콜라처럼 생긴 가게에서 꽃을 파는 곳들이 곳곳에 있었다. 원래 에디콜라는 신문과 잡지를 파는 작은 가게인데, 로마에서는 그런 모양의 공간에 꽃이 가득 놓여 있었다. 다른 도시에서는 잘 보지 못한 모습이라 더 오래 눈에 남았다.
신기했던 것은 그런 꽃가게들이 밤늦게까지 열려 있었다는 점이었다. 밤에도 꽃을 팔고, 누군가는 그 시간에 꽃을 사러 오는 도시라니. 그 사실이 이상하게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꽃이나 화분을 사는 마음만큼 낭만적인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5월의 밤에 재킷을 걸치고 밖으로 나가, 길을 걸어 꽃집으로 향하는 사람의 마음을 잠시 상상해본다. 어쩌면 꽃은 가장 쓸모없는 듯하면서도 가장 조용하게 사람을 위로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행 마지막 날에는 그곳에서 꽃을 사서 돌아가고 싶었는데, 결국 깜빡하고 그냥 떠나왔다. 사진도 찍지 못했고 꽃도 사오지 못했지만, 그래서인지 그 장면이 더 아쉽게 남았다.
둘째 날에는 앤틱 서점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타고 나보나 광장 근처로 갔다. 버스 좌석에 앉아 창밖으로 본 로마는 또 달랐다. 큰 건물들, 오래된 거리, 가게와 레스토랑, 많은 관광객들. 그리고 생각보다 깨끗한 거리.
나는 그때 조금 놀랐다. 로마가 이렇게 괜찮았나. 크고 복잡하고 피곤한 도시일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버스 창밖의 로마는 아름다웠다. 물론 조심해야 하는 도시는 맞다. 관광객이 많은 곳에서는 소매치기도 늘 조심해야 한다. 그래도 내가 본 로마는 생각보다 친절했고, 생각보다 정돈되어 있었고, 생각보다 매력적이었다.
돌아보면 이번 여행이 좋았던 이유는 하나가 아니었다. 산피에트로 대성당의 압도감, 시스티나 성당에서 고개를 들고 있던 사람들, 남편과 먹은 저녁, 프라티의 평범한 카페, 밤늦게까지 문을 열고 있던 작은 꽃가게, 버스 창밖으로 지나가던 로마의 거리. 그 장면들이 합쳐져서 로마에 대한 내 인상을 조금씩 바꾸어 놓았다.
그래서 이번 여행 뒤에 분명히 달라진 것이 있다. 로마는 처음으로 나에게 목적지가 되었다. 오래도록 어딘가로 가기 위해 지나쳐야 하는 도시였던 로마가, 이번에는 잠깐 내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왜 사람들이 그 먼 길을 와서 로마를 보는지. 왜 이 도시가 여전히 사람들을 불러들이는지.